교과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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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출처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내물마립간

| 2005.02.09 | 조회 303
신라 제17대왕(356∼402). 성은 김(金)씨. 할아버지는 갈문왕(葛文王) 구도(仇道)이고, 아버지는 각간(角干) 말구(末仇), 어머니는 휴례부인(休禮夫人), 왕비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딸인 보반부인(保反夫人) 김씨이다. 내물마립간 시대에는 국가체제가 정비되고 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존엄성 있는 왕호가 필요하게 되어 마립간이라는 왕호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뒤부터 박(朴)·석(昔)·김의 왕위계승이 없어지고 김씨의 독점적 세습이 가능해졌다. 대외적으로 전진(前秦)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중국문물 수입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백제가 왜(倭)와 연합하여 여러 차례 신라를 침범하자 399년에 고구려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여 백제군과 왜군을 격파하였다. 그 뒤 고구려의 간섭이 심해져 이찬 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實聖)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야 했고, 401년 귀국한 실성이 내물마립간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도 고구려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물마립간 때 신라는 비록 고대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대외적으로는 아직 고구려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해야 하였고, 그 결과 내정간섭을 받을 정도로 자주적인 발전 기반을 확고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전국에 관원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위문하고, 흉년이 든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지방에 1년 동안 세를 면제하여 민심을 수습하기도 했다. 재위중 중국문화가 고구려를 통해 들어와 비로소 한자가 사용된 듯하며, 백제 독산성주(禿山城主)가 300명의 주민을 이끌고 투항하자 외교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주었고, 동북국경지방에서는 말갈족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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