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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신라의 풍류 월명사(月明師)

| 2005.01.27 | 조회 2238

신라가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것은 군사력이 강했다는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훌륭한 나라를 건설 할 수는 없다. 신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었고 그 찬란한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신라인들이 참다운 『멋』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꽃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화랑들을 보라! 이름 그대로『꽃다운 서방님』들이다.
문과 무를 함께 갖추고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생사를 초월한 여유를 가졌다. 화랑들의 위대함을 바로 이러한『멋』을 가지고 있었는데 있다. 그래서 화랑도를 신선 또는 풍유도라고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라의 참다운 『멋』을 지녔던 대표적인 한 사람이 월명사(月明師)였다. 월명사는 신라가 통일 되고 문화가 전성시대에 들어가는 35대 경덕왕 때의 사람이다. 그당시 가장 유명한 스님이였던 능준대사(能俊大師)의 문인이었으며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살고 있었다.
본명이 무엇이였는지는 전하지 않고 월명사라고만 알려졌다. 그가 월명사라고 불리게 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피리의 명수였는데 달밝은 밤에 피리를 불고 사천왕사의 앞길을 지나가면 하늘의 달도 걸음을 멈추고 피리소리에 넋을 잃은 듯했다.
이래서 그가 피리를 불면서 거닐던 거리를 월명리(月明里)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도 월명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달의 걸음을 멈추게 하여 밝기를 더했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전설이지마는 얼마나 피리를 잘 불렀건데 이런 이름이 생겼으며 이런 전설이 생겼겠는가?
월명사는 피리의 명수로서 전설의 주인공이 될 정도였지마는 한편 이름 높은 향가(鄕歌)의 작가이기도 했다. 향가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러 우리의 감정과 정서를 나타낸 신라의 독특한 시가(詩歌)의 한 형태이며 모든 것을 내 것으로 할려는 신라인의 주체성의 작용을 이런 방면에서도 엿 볼수 있다.
월명사가 남긴 작품으로는「도솔가(滔率歌)」와「제망매가(祭亡昧歌)」의 두수가 남아 있을 뿐이지마는 향가 작가로서도 그는 전설의 주인공이였다. 월명사로 하여금 향가작가로서도 전설의 주인공을 만든 경위는 다음과 같다.
경덕왕(景德王) 19년 4월 초하루의 일인데 태양이 둘 나타나서 열흘이 되어도 그 현상이 사라지지 않으니 백성들이 겁을 먹고 생업에 종사할 용기가 없어졌다.
일관(日官)이 이 점을 치고 천기도 살핀 결과 아뢰기를, "인연이 있는 중을 청해서 꽃을 뿌리고 공덕을 드리면 이 불길한 현상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는 것이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조원전(朝元殿)에 정결한 제단을 마련하고 청양루(靑陽樓)에 나아가서 인연있는 중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 때 마침 월명사가 지나갔다. 왕은 그를 불러들여 제단에 나아가 노래를 지어 제를 드리도록 명하였다. 명령을 받은 월명사는 "신승(臣僧)은 다만 화랑의 한 사람으로 향가를 조금 알뿐이지 제를 올리는데 필요한 불교의 노래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를 못합니다."하고 사양을 했다.
그러나 왕은 "점에 의하여 그대가 인연있는 중으로 선정되었으니 비록 향가라도 상관 없으니 제를 올리도록 하라!"고 거듭 명령하였다.
이래서 지은 향가가 도솔가(稻率歌)인데 그 뜻은 이러하다
"오늘 이곳 궁궐에서 산화가(散化歌)를 부르면서
푸른 구름 저 멀리 한다발 꽃을 보내나니
은근하고 곧은 마음을 시켜
도솔천 저멀리 미륵보살님을 모셔 오소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월명사가 이 도솔가를 부르고 제를 올리니 당장에 태양의 괴변이 살아지는 것이었다. 이 일은 온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왕은 더욱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월명사의 작품으로서는 도솔가 외에 「제망매가(祭亡昧歌)」라는 또 한 수의 향가가 전해지고 있는데 여기에도 신기한 전설이 따르고 있다. 즉 월명사에게 한 누이가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누이를 위해 제를 오리는데 향가를 지어 제사지내도록 했다. 그런데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어 신주에 향가를 적은 지전(紙錢)을 높이 불어올려 극락세계가 있는 서쪽 하늘로 사라지게 하고만 것이다.
「제망매가」라는 향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생사의 길이 여기에 있어
너와 나는 이별의 말도 못다 이르고 떠나야 하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에 떨어져 여기 저기 휘날리는 낙엽처럼
하나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가 가는 곳 마져 알 길 없어라!
아아! 아미타불의 세상에서 만날 우리,
도를 닦아 그날을 기다리겠노라”
월명사는 피리를 불어서는 가는 달의 걸음마저도 멈추게 했고, 향가를 지어서는 두 번이나 기적을 나타내게 했다. 피리와 향가, 그리고 하랑의 무리에 적(籍)을 둔 중......
얼마나 멋진 일이냐. 신라의 그 찬란한 문화는 바로 이런 곳에 뿌리를 두고 자라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