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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출처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관창(官昌)의 충혼 황산벌에 피다

| 2005.01.27 | 조회 2216
때는 신라 무열왕(武列王) 7년 (A.D 660) 7우러 9일, 이곳 황산벌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3국 통일을 위한 중대한 일전이 될 오늘을 위해 신라는 군사와 외교의 양면을 통해 마반의 준비를
갖추어왔다. 지난 6월 18일에는 남천정(南川停)에서 왕을 모시고 마지막 작전회의를 마쳤으며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과도 빈틈 없는 연락이 이루어졌다.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 품일(品日)과
흠춘(欽春) 등의 장군을 거느리고 5만의 대군으로 이 곳 황산벌에 진격해온 것이다. 신라군은 수에 있어서도 압도적인 대군이며 오랜 전쟁에서 연마된 정병들이다. 따라서 전쟁의 결과는 명백했
다. 그러나 싸움은 예상을 뒤엎어 신라군의 전세는 아주 불리했다. 백제군의 공격은 너무나 용감했고 신라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여 이제는 기력도 다할 지경이 되었다.
백제의 용장 계백( 伯)은 5천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미리 이곳에 도착해서 험한 지형을 이용하고 진을 치고 있었다. 계백장군을 따르는 5천 병사는 문자 그대로 결사대이며 황산벌을 무덤터로 작
정하고 있었으니 그 사나운 창끝을 어찌 당할 수 있겠는가!
계백장군은 전선에 나올때 가족을 모아두고 결심을 털어 놓았다.
"백제의 움명도 이제 다한 것 같다. 신라와 당나라의 대군을 맞아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겠는가? 오늘의 전투가 나의 마지막 전투일 것이며 황산벌에 내 뼈를 묻을 작정이다. 그러고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것은 너희들이다. 처자가 뒤에 남아 있으면 내 마음이 흔들릴 것이며 또한 일이 잘못되어 적의 수중에 떨어져 노예의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처자들이 적국의 노예가 되는 것은 내
차마 견딜 수 없는 일이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고 내 혼백은 구천을 헤매며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손에 죽는 것이 천번 만번 대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계백 장군은 눈에서는 하
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장엄한 순간이었다. 온 가족들은 기꺼히 그의 손에 죽기를 원했다. 온 가족들은 계백장군이 마음 놓고 마지막 싸움터를 장식하도록 죽어갔다.
나라가 망하는 그늘에 가리어 크게 드러나지 못했지마는 영원히 우리들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결사의 각오로 싸움터에 나온 계백장군의 백제군에 신라군이 당할 수 없는 것도 당연
했다. 그러나 신라로서도 황산벌의 일전만은 절대로 패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오래 지체할수도 없었다. 당나라의 소정방과 백제의 서울인 사비성(泗泌城)을 공격할 날짜를 정해 놓고 있었던 까닭에 여기서 시간을 지체한다면 중대한 결과를 초래시킬 우려가 있
었다. 백전백승 명장인 김유신 장군의 얼굴에도 초조한 기색이 역역했다.
"전세를 유리하게 전환시킬 무슨 계기가 마련되어야 할텐데..."
그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화랑 반굴(盤屈)도 전사했다. 그러나 전세를 전환시키지는 못했다. "무슨 방도가 있을텐데..." 신라군의 장수들의 얼굴에는 깊은 우려의 기색이 나타나고 있었다. 좌장군
(左將軍) 품일(品日)도 사태의 중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닥쳐올 결과는 참으로 예측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장군의 눈에 어떤 비장한 결의 빛이 나타났다. 품
일 장군은 아들 관창(官昌)을 불러 여러 군사 앞에 세웠다. 나이는 16세에 불과했지마는 일찍 화랑으로서의 수양을 쌓아 무술의 여러면에 뛰어나 많은 사람의 촉망을 받고 있었다.
부친 품일 장군 앞에 선 관창은 그 늠름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면서 장군의 명령을 기다렸다. 품일장군은 이 자랑스러운 아들의 얼굴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이승에서 마지막이 될 아들의 얼굴이
다. 아들에 대한 지난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장군은 아들에 대한 추억의 그림자를 털어버리고 명령을 내렸다.
"너의 나이 겨우 16세이기는 하나 화랑의 도를 몸에 익혀 나라 위한 마음에 있어서 남에 뒤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화랑은 언제라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화랑
의 계율을 지킬 때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이 아비에 대한 효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너 능히 그 책임을 다할수 있겠는가?" 부친의 말을 들은 관창의 얼굴에는 굳은 결의가 피어 올랐다. "소자
비록 나이가 어리다 하나 화랑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는 몸이며 거기에다 아버지의 자식이옵니다. 죽음으로서 책임을 다하여 화랑의 명예를 빛내고 충효를 다하겠읍니다." 품일 장군은 힘찬 아들
의 맹세를 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선을 가르켰다. 품일장군도 사람이며 아버지이다. 자식에 대한 미련이 사랑이 왜 없겠는가?
가슴을 애이는 아픔을 삼키고 자식을 죽음의 장소로 내보내야만 했다. 통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신라의 장군이기에 앞서야만 했다.
아버지 앞을 물러나온 관창은 갑옷을 고쳐 입고 투구 끈을 졸라 매었다.
"화랑답게 내 최후를 장식하자!"
창을 들고 채찍을 쥐면서 관창은 마음으로 다지는 것이였다. 이쪽은 백제의 지영, 한차례의 격전이 지나간 뒤 양군은 잠깐 휴식상태에 들어갔다. 이때 신라의 진영에서 한 용사가 단기로 창을 비
껴들고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백제군에 뛰어든 그 용사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창을 휘두르면서 싸우는 모습이 마치 신장(神將)과도 같다. 용감했던 백제군도 그 기세에 눌려 잠시 뒤로 물러서는 듯 했다.
그러나 아무리 용감해도 단 한 사람이다. 백제군은 겹겹이 애워 싸고 몰아쳐서 드디어 사로잡을 수가 있었다. 사로잡힌 신라의 용장은 계백장군 앞으로 끌려 나갔다. 계백장군은 용감한 지장의
얼굴을 보려고 투구를 벗겼다. 그 용사는 말할 것도 없이 관창이었다. 그러나 계백장군은 깜짝 놀랐다. 용감무쌍한 신라의 장수는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홍안의 미소년이 아닌가? 옷을 찢겨지
고 피까지 흘리면서 성난 눈동자를 크게 뜨고 계백장군을 노려보는 이 소년, 그러나 그 눈은 한 없이 맑기만 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던 계백장군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탄식했다.
"신라와는 능히 대적 할 수가 없겠구나! 소년도 이러한데 하물며 장사에 있어서야! 내 차마 저 어린 용사를 죽일 수가 없다. 살려서 고이 돌려 보내도록 하라!"
용장만이 용사를 알고 충신만이 충신을 사랑할 줄 안다. 만고의 용장이요, 충신이기에 계백은 관창의용기와 그 충성을 사랑했다.
살아서 돌아온 관창은 아버지 품일 장군 앞에 나아가 사죄했다. "소자 적진으로 뛰어 들어 갔으나 능력 없고 힘 부족하여 능히 적장을 베이지 못하고 깃발을 빼앗아 오지 못했으니 부끄럽기 비할
곳이 없읍니다. 다시 적진으로 들어가 기여이 성공하고야 말겠읍니다."
품일 장군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범의 입같은 적진에서 무사히 돌아온 아들을 보고 크게 꾸짖었다. "장부가 뜻을 품고 적진으로 들어가서 공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서 돌아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로다. 가라! 그리고 화랑의 명예를 지키고 책임을 다하라!"
아버지 품일 장군의 호령은 가을날의 서릿발 같았다.
관창은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시고는 또 한번 적진으로 뛰어 들어 갔다.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을 한 관창의 활약은 참으로 놀라웠다. 그러나 어린 그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창도 칼
도 부러지도 말도 지쳤다. 힘이 다한 관창은 또 다시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다.
계백장군은 방금 살려서 돌려보낸 소년임을 확인하고 간담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신라의 융성과 백제의 멸망을 눈 앞에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는 하는 수 없이 마음 속으로 눈물을 지우면서 관창의 목을 치고 그 머리를 말 안장에 메어달아 신라군으로 돌려 보냈다. 관창은
돌아왔다. 머리만 돌아왔다. 품일 장군은 몸통 없는 아들의 머리를 안고 흐르는 피를 옷깃에 적시면서 살아 있는 아들을 대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내 아들아. 관창아, 장하도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그보다 더 장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너는 충과 효를 다 했으니 내 이제 무엇을 바라겠느냐!"
아들의 죽음을 칭송하는 품일 장군은 솟아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안으로 삼켰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신라군에는 큰 감격이 일어 났다. 고요한 물결은 갑자기 파도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물
결은 순식간에 온 신라군을 덮쳤다.
"관창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 "관창과 반굴의 뒤를 따르자!"
신라의 대군은 마치 큰 홍수처럼 백제군을 덮쳤다. 고함소리, 말의 울음소리, 칼이 마주치는 소리, 비명소리, 피 무지개가 서고 때 아닌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니 순식간에 황산벌은 지옥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수에 있어서 너무나 뒤떨어진 백제군은 도저히 신라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백 장군도 용감한 최후를 마쳤다. 백제의 최후를장식한 가장 큰 싸움이었다.
황산벌의 싸움은 3국을 하나로 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가장 험한 고비의 하나였다.
관창은 그 한몸 바쳐 황산벌의 승리를 얻은 계기를 마련했으니 통일의 역정(歷程)에 가장 및나는 이정표를 그 어린 손으로 세운 것이다. 통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관
창의 죽음이 또한 얼마나 귀언 것인가를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