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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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출처 :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무덤속에서 임금을 깨우친 김후직(金后稷)의 충성

| 2005.01.27 | 조회 2306
황성공원의 북쪽에 동학의 성지인 용담(龍潭)으로 통하는 큰 길이 있고 이 길 건너편에 있는 과수원 사이에 한 개의 초라한 고분이 있다. 이름불러 간묘(諫墓)라고 하는데 이 간묘야말로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고 무덤 속에서 왕을 간하여 왕의 잘못을 고친 충신 김후직(金后稷)의 무덤이다.
경주는 고분의 서울이라고 할 만큼 고분이 많다. 경주 분지를 메우다시피 하고 있는 저 많은 신라 고분들은 왕공 귀족들의 무덤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일이지마는 무덤의 주인공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더욱이 왕도 아닌 김후직의 무덤이 전해져 왔다는 것은 비록 무덤은 초라하지마는 충신만이 받는 존경의 결과인가 싶다.
김후직은 26대 진평왕(眞平王)때의 사람이다. 22대 지증왕(智證王)의 종손이니 진평왕과는 아주 가까운 촌수가 되는 셈이다. (7촌 숙)진편왕은 나라의 형편이 내외로 아주 어려울 때 왕위에 올랐
다. 진흥왕 때의 대 발전기에 고구려와 백제를 함께 적으로 돌리게 된 이후로 국경에서의 긴장은 날로 더해져서 언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결전이 다가올지 모를 정세에 있었다. 하편 국내
로는 진지왕(眞智王)의 뒤를 이은 까닭에 역시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진지왕이 정치를 잘못하여 왕위에 있었는지 4년만에 국민들에 의해서 왕위에서 추방되었으니 그 뒤를 이은 진
평왕으로서는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 국민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내외로 어려운 시기에 왕위에 오른 진편왕이었으나 우감스럽게도 정치에는 흥미가 없고 오로지
사냥하는데만 열중하고 있었으니 신하들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김후직은 이러한 왕의 생활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당시 병부령(兵部令:국방부장관)이였으
며 도저히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김후직은 일대결심을 하고 성의를 다해서 간했다.
"옛부터 임금된 분은 하루의 정사를 처리하는데에도 먼 훗날의 일까지 염려하여 시행하는 법이며 좌우에서 모시는 신하들의 올바른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 들이는데 인색함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나라의 발전에 기울려 하루도 편안하게 쉬는 날이 없이 정치를 돌본 연후에라야 비로소 덕망있는 정치가 이루어지고 만백성이 태평을 누리고 나라가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날마다 저 미친 사람과 같은 사냥군과 어울려 사냥에만 마음을 쏟고 정사를 살피지 않으시니 나라의 앞날을 장차 어찌 하실 작정이십니까? 부디 사냥을 그만 두시
고 선현의 가르침을 따르시옵소서"
김후직의 간언은 간절했다. 그러나 왕은 김후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날마다 사냥에만 정신이 빠진 왕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김후직은 왕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통탄할 뿐이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책망과 나라의 장래에 대한 염려는 결국 그를 하여금 병상에 눕게 하고 말았다. 병상에서도 그의 생각은 왕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그것뿐이었다.
그러니 병세가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의 병은 자꾸만 악화되어 이제는 회복될 사망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 같았다.
임종이 가까워진 것을 깨달은 그는 아들을 불러 놓고 마지막 유언을 했다.
"나는 이 나라의 국록을 먹는 신하가 되어 임금의 그릇됨을 바로 잡지 못하고 저렇게 사냥에 빠진 임금을 보고만 있어야 하니 죽어도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내 비록 죽는다 해도 혼백이라도 남아
서 반드시 임금을 깨우치게 하여 신하된 도리를 다 할 것이니 내 시체를 임금님께서 사냥 다니시는 길목에 묻도록 하여라"
유언을 마치자 그는 숨을 거두었다. 아들들은 부친의 유언과 같이 장사를 지냈다.
왕은 여전히 사냥에만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사냥을 갔다. 항상 다니는 길목에 왔을 때 수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았다.
왕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대왕께서는 부디 사냥을 그만 두시고 정치를 돌보소서"
왕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디서 누가 하는 소리인가? 왕은 좌우에 명하여 그 소리 나는 곳을 살피도록 했다. 그랬더니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 소리는 길가에 있는 한 무덤 속에서 나는 것이
아닌가! 그 무덤이야말로 바로 김후직의 무덤이었다.
"그 소리는 김후직의 무덤에서 나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리고는 김후직의 유언을 함께 아뢰었다. 듣고 있던 왕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한참 동안 묵묵히 눈물에 젖어 있던 왕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의 그렇게도 간절한 충고를 내 어찌 몰랐던고! 어리석도다! 만약 내가 당장에 내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훗날 무슨 면목으
로 그의 영혼을 대하며 조상의 영령을 뵈오리!"
그 후 진평왕은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에만 마음을 쏟았다. 죽어서도 나라를 잊지 않는 충신,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라를 보전하는데 전력을 다 할줄 아는 임금, 그 충신에 그
임금들이 있었기에 신라는 그 어려운 사정을 극복하고 통일의 대업을 성취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